[기고] 오토데스크 디자인 & 메이크 서밋 코리아 2026 참관기
도구의 시대를 지나 운영 모델의 시대로
디지털과 현실을 잇고 아이디어를 실제 가치로 구현하는 방식, 오토데스크가 말하는 ‘디자인 & 메이크(Design & Make)’다. 7월 15일에 열린 ‘오토데스크 디자인 & 메이크 서밋 코리아 2026’은 그 진화를 이끄는 세 개의 키워드(데이터, AI, 컨버전스) 를 축으로 구성되었다. 기조연설로 문을 열고, 세 곳의 고객 성공 사례가 이어졌으며, 오토데스크 코리아의 AI 세션으로 마무리되는 하루였다.
필자가 이날 현장에서 받은 인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가 ‘어떤 도구를 써야 하나’로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면, 올해의 화두는 ‘어떤 데이터를 어떤 거버넌스로 다룰 것인가’로 옮겨 갔다.” 마지막 세션에서 오토데스크코리아의 정태승 박사가 던진 이 진단은 사실 그날 발표자 대부분이 서로 다른 언어로 반복한 말이기도 했다. 도구(BIM)는 이미 전제가 되었고, 승부처는 그 위에 쌓이는 데이터와 그것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 오토데스크 디자인 & 메이크 서밋 코리아 2026 현장
기조연설 — 새로운 청사진, 그리고 모두를 위한 디자인
이번 행사의 기조연설은 오토데스크의 켄 푸(Ken Foo) 전략 파트너십 부사장이 맡았다. ‘The New Blueprint : Data, AI, and Convergence’라는 제목처럼, 데이터·AI·산업 융합이 기업의 운영 방식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조망했다. 프로젝트는 갈 수록 복잡해지고 수익성 압박은 커지는데, 연결된 데이터와 플랫폼, 그리고 워크플로에 내장된 AI가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 업무의 예측 가능성, 효율과 품질, 나아가 혁신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핵심 메시지였다.
고객 기조연설은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송지현 실장과 이준호 책임연구원이 ‘Nanomobility – Design for All’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동약자와 도시의 이동 문제에서 출발한 나노 모빌리티가 포용적 디자인과 제품 혁신으로 발전하고, 오토데스크 설루션 기반의 워크플로를 통해 더 가볍고 강하며 제조 가능한 구조로 구현된 과정을 소개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나노 모빌리티 사례는 ‘디자인’ 과 ‘메이크’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예시였다.
고객 성공 사례 세 편 — 다른 출발점, 같은 결론
GS건설, 간삼건축,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연달아 무대에 올라 각자의 현실적인 고민과 시도를 공유했다.
GS건설 — CDE로 ‘흩어진 정보’를 연결하다
GS건설 디지털건설팀의 조재영 팀장은 아주 현실적인 질문으로 발표를 열었다. ‘현장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려면 몇 개의 시스템을 뒤져야 할까?’ 도면은 도면 시스템에, BIM은 별도 서버나 담당자 PC에, 이슈는 메신저와 메일에, 검측 서류는 개인 PC와 휴대전화에 흩어져 있다.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 결과 무엇이 최종본이고 기준인지 확인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든다.
그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CDE(Common Data Environment, 공통 데이터 환경)다. 조 팀장은 CDE가 원드라이브 같은 단순 저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신 도면과 BIM, 시방, 이슈, 검측 사진 같은 ‘승인 정보’를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 협업 공간이라는 것이다. 모든 참여자가 같은 승인 정보를 기준으로 일하고, 변경·검토·조치 과정이 기록되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언제 어떤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추적할 수 있다.
글로벌 건설사의 정보 관리는 파일 저장에서 출발해 사내 서버·EDMS를 거쳐, 영국발 정보 관리 기준(ISO 19650)이 확산되면서 상용 협업 플랫폼으로, 다시 클라우드·모바일 환경으로 발전해 왔다. 지금은 CDE를 PMS·ERP·데이터 레이크·AI와 연결해 전사 데이터 기반으로 확장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CDE와 ‘AI 도면 시스템’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한 대목이었다. CDE가 답해야 할 질문은 “어떤 도면이 최신 승인본인가”(버전·승인 권한·배포·감사 이력)이고, AI 도면 시스템의 질문은 “이 도면에서 무엇을 찾고 분석할 수 있는가”(검색·비교·요약·오류 후보 탐지)다. 만약 AI 시스템이 승인·배포·버전 관리까지 떠안으면 사실상 또 하나의 CDE를 자체 개발·운영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공식 기준 정보는 CDE가 관리하고, AI는 그 위에서 검토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CDE 선택 기준으로는 여덟 가지 항목이 제시되었다.
ISO 19650 기반 정보 관리 적합성 : 작성 중/공유/승인/보관 등 정보 상태 구분, 명명 규칙·고유 ID·메타데이터, 버전·워크플로·감사 추적·아카이브
도면 관리 : DWG·DGN·PDF 등 원본 형식과 외부 참조(Xref) 지원, 시트 단위 관리, OCR 속성 추출, 개정 전후 비교·마크업
BIM 지원 : 레빗(Revit)·나비스웍스(Navisworks)·IFC 등 주요 모델 조회, 건축·구조·설비 통합 검토, 간섭·설계 변경을 이슈로 전환
모바일 사용성 : 지하층·통신 음영 구간에서도 도면 확인, 이슈·체크리스트·사진을 도면 위치에 바로 연결
권한·보안 : 역할·폴더·문서 상태별 권한 구분, 인증·저장 위치·활동 로그
API·데이터 연계성 : PMS·공정·ERP·자재·원가·드론·레이저 스캔 연결, 데이터 레이크·AI 분석 활용
도입·표준화 용이성 : 표준 폴더·권한·워크플로 템플릿화, 한국어 지원, 국내 기술 지원, 확산성
비용·벤더 리스크 : 초기 구축비 외 라이선스·스토리지·교육·운영을 포함한 장기 총비용, 종료 시 데이터 반출과 종속성
조 팀장은 이 여덟 가지를 결국 세 개의 질문으로 압축했다. 공식 기준 정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가, 현장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가, 회사 시스템과 연계해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 이 조건을 폭넓게 충족하는 설루션은 많지 않은데, 오토데스크 포마(Forma)가 그 몇 안 되는 선택지에 든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BIM 360과 컨스트럭션 클라우드(Construction Cloud, ACC)를 거쳐 지금은 포마를 중심으로 계획·설계·시공 데이터를 잇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 중심에 도면·문서·모델을 다루는 데이터 매니지먼트가 있으며 그 위에 Collaborate·Build·Takeoff와 초기 계획 기능이 얹힌다.
실제 적용 사례도 구체적이었다. 통도면을 시트 단위로 전환하면 변경된 도면만 새 버전으로 등록되고 개정 전후 비교가 가능해진다. 부담이 되던 통도면 분할은 GS건설이 AI OCR로 도면번호· 도면명을 인식해 자동 분할하는 웹 도구를 자체 개발해 써 왔는데, 최근에는 포마의 페이지·속성 추출 기능으로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잘못 인식된 정보가 그대로 기준이 되지 않도록 최종 검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밖에 웹·태블릿에서의 BIM 접근, 도면·모델의 정확한 위치에 이슈를 등록하고 담당자·기한·상태를 지정하는 기능, 그리고 검측 서류의 준비·출력·제출 과정을 통째로 없앤 모바일 검측 사례가 소개되었다. 철근 검측 자동화(도면 속 부재명을 AI가 인식해 구조 일람과 연결)는 아직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포마와 MCP(모델 콘텍스트 프로토콜)를 연결한 확장 실험을 공유했다. CDE의 도면·BIM·공정표·현장 데이터를 API로 LLM(대규모 언어 모델)에 연결해, 자연어로 특정 층 물량을 조회해 보고서로 받거나, 공정표 기반 CP(주공정) 분석, 구조 부재 Takeoff의 엑셀 내보내기, BIM 모델 기반 작업 위험 검토를 시험해 본 결과다. 최근 한글 지원이 개선되었고, 국가건설공사 표준시방·LH·도로·철도 등 국내 기준이 반영되면 활용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조 팀장의 결론은 명료했다. “CDE는 하나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구성원이 같은 정보를 기준으로 일하게 만드는 변화다.”
▲ GS건설 조재영 팀장의 CDE·포마 적용 발표
▲ GS건설 발표 인포그래픽(필자 생성 by Gemini)
간삼건축 — 데이터 자산화가 가져올 미래
간삼건축 이혁 INNOVATION 부문 대표의 발표는 세 사례 중 가장 서사적이고 성찰적이었다. 2008년 간삼건축에 합류해 십 수 년간 프로세스 효율화와 인적 자산 관리를 고민해 온 그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실험적인 이야기”라며 담담하게 자사의 시행착오를 풀어놓았다.
출발은 2023년의 한 경험이었다. 연말에 급하게 작은 오피스를 호텔로 리모델링하는 기획설계를 맡게 되었는데, 유튜브에서 본 3D 모델링 기반 AI 렌더링을 처음 시도했다. 금요일 오전 세 시간 모델링, 오후엔 BIM 팀원과 함께 손을 보고, 두 시간 만에 50여 장의 이미지를 얻었다. 주말을 거쳐 결국 둘이서 14시간 만에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가 놀란 것은 이미지 품질이 아니라, ‘AI를 쓰면 우리 프로세스를 이렇게 압축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CAD와 스케치업이 각각 도면과 모델만 다루는 ‘반쪽짜리’라면, 라이노(Rhino)와 레빗으로 옮겨 모델링이 도면으로 직접 이어지고 AI로 이미지를 얻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AI를 잘 쓰려면 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며, “세상은 데이터로 넘어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간삼은 지난 5년간 여러 조치를 빠르게 진행했다. BIM 교육 동영상 배포, 전사 BIM 능력시험, CAD 허가제, 템플릿 개정, 파라메트릭 팀 신설, 연 10여 회의 AI 세미나. 그러나 그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빌려 조직의 저항을 유쾌하게 꼬집었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오기까지 거친 여섯 별의 어른들이 회사에 다 있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하지 않으면서 아랫사람에게만 BIM을 시키는 사람, 끊임없이 허점만 지적하는 사람, “난 CAD가 BIM보다 빠르다”고 버티는 시니어 — 자전거를 빨리 타서 자동차를 이기겠다는 이들 — 와 매일 씨름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바오밥 나무를 뽑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것이 ‘팀31’ 이다. 기존 BIM 매니저 팀에 건축 설계 시니어를 붙인 조직으로, 목표는 SD(계획설계) 종료 시점에 실시설계 도서 총량의 30%를 확보하는 것. 도면 총량 30%에 도면당 완성률 60%를 곱하면 18이라 원래 이름은 ‘T18’이었는데, 직관적인 ‘팀31’로 바꿨다는 뒷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냈다. 설계팀 한 명과 팀31 두 명을 짝지어 올해 이미 12개 프로젝트에서 SD 종료 시 40~45%까지 도면을 만들어 내고 있고, 회사 기준으로 전체 설계 효율을 약 6%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자산화 도구도 촘촘했다. 클라우드 협업 보드 미로(Miro)에 계약·목표와 SD 30% 분량의 도면 150여 장을 올려 피드백을 공유하고, 포마에는 간삼의 매스 자산을 허브에 DB처럼 올려 쓰며(파트너사 상상진화의 Forma Box로 초기 계획을 압축), 환경 분석은 라이노의 그래스호퍼(Grasshopper)보다 간편하다고 평가했다. 이미 2차 교육을 마쳤고 8월 중순 3차 교육 후 전면 적용할 계획이다. 오토데스크의 콘텐트 카탈로그(Content Catalog)로는 엘리베이터의 모든 사양에 이름을 붙여 클라우드에 올려 파라미터 조정 없이 선택·삽입하게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방풍실·병실·계단실·화장실 등 패밀리 조합을 블록으로 저장했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디테일 DB는 1/50·1/60 도면을 함께 연동하고, 그 디테일을 언제 써야 하는지·주의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경험자의 설명과 별점·좋아요까지 붙였다.
이 대표는 아키텍트 펌의 기술을 ‘감자 이야기’에 비유했다. 1500년대 유럽에 감자가 퍼졌지만 사람들은 ‘악마의 식물’이라며 먹지 않았고, 1700년대 대기근 때에도 감자를 두고 굶어 죽었다. 1800년대 보급 이후 인구가 폭발했지만, 작황 좋은 한 품종만 심은 탓에 감자 마름병(역병)이 창궐하자 아일랜드에서만 150만이 아사했다. ‘안 먹어서 죽고, 그것만 먹어서 죽는다’는 이 우화를, 이 대표는 AI에 그대로 겹쳤다. 쓰지 않으면 뒤처지고, 특정 방식만 맹신하면 위험하다는 것. 실제로 지금 설계실을 들여다보면 절반은 PPT를, 절반은 AI를 쓰고 있는데, 도면 없이 화려한 겉모습만 남는 상태를 그는 오히려 경계했다.
지식 자산화의 진짜 벽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세대였다. ‘내 자산인데 왜 회사에 내놔야 하느냐’는 물음은, 이 대표가 보기엔 도제식 문화의 방어 심리로서 나름 합리적이다. 아키텍트 펌은 사람을 자산처럼 다뤄 왔지만, 그 자산은 회계장부에 잡히지 않고 복제·확장·승계도 안 되며 사람이 떠나면 함께 사라진다. 동료의 피드백을 거치지 않은 개인 자산은 품질도 낮다. 결과의 공정성보다 과정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MZ 세대는 회사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개인의 가치를 ‘추출’해 회사 가치로 만드는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내어놓고 서로 교환하며 성장하는 ‘마당(커뮤니티)’을 만드는 것이다. 성과에는 ‘OO의 리포트’, ‘OO의 LISP’, ‘OO의 AI 디자인’처럼 이름을 붙여 인정한다. TFT로 만든 ‘모두가 만드는 플랫폼’은 이미 베타를 열었고 9월 초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특히 간삼건축 이혁 부문 대표의 마지막 말은 이날 여러 발표가 향하고 있던 방향을 가장 명확하게 요약했다. “BIM을 시작으로 AI와 클라우드까지, 단순히 도구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혁신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간삼건축 이혁 부문 대표의 ‘데이터 자산화’ 발표
▲ 간삼건축 발표 인포그래픽(필자 생성 by Gemini)
삼우건축 — DX부터 AX까지
삼우건축 AX팀의 윤종근 프로는 삼우가 BIM 기반 설계 체계에서 출발해 DX(디지털 전환)를 거쳐 AX(AI 전환) 운영 모델로 이동한 여정을 단계별로 정리했다. 그는 이 여정을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설계자가 문제를 더 빠르게 정의하고 AI·클라우드로 해결하며 그 결과를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하는 새로운 업무 방식”으로 규정했다.
시작은 BIM이었다. 삼우는 2016년부터 전면 BIM을 수행하며 BIM을 조직의 ‘설계 기준’으로 만들었다. 전 직원 BIM 역량 평가, CAD 표준과 수행 경험·자동화 속성을 반영한 표준 템플릿, 반복 업무를 시스템화한 삼우 BIM 익스텐션, 2018년 건축·구조 표준 모델과 도면 기준, 2019년 설계 단계별 권장 모델이 그것이다. 핵심은 ‘BIM을 썼다’가 아니라, 설계 기준과 노하우·모델·도면 작성 방식을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했다는 점이다.
DX 단계의 목표는 본업 경쟁력 강화였다. AutoDrawings로 도면·시트 작성을, 창호·입면도 자동화로 뷰 생성·주석·시트 배치를 자동화했고, 구조 모델링과 일람표, 실내 마감표, 룸 데이터 시트(문서의 실 정보와 레빗 모델 정보를 연동)로 확장했다. 방식은 기술 부서가 현업의 문제를 수집·분석해 개발·배포·교육하고 현업이 적용하는 구조였다. 초기 성과는 분명했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자동화 수요는 느는데 개발 인력은 제한적이고, 기능을 만들어도 실제 활용까지 이어지지 못했으며, 현업은 어떤 기능이 언제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질문은 ‘무엇을 더 자동화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더 잘 활용할 것인가’, 나아가 ‘누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에 참여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두 갈래의 시도가 이어졌다. 하나는 사내 플랫폼 ‘DX 가이드맵’으로, 이미 만든 자동화 기능을 현업이 쉽게 찾아 적용하도록 연결했다. 이때 기술 부서의 역할이 ‘만드는 생산자’에서 ‘환경을 제공하는 프로바이더’로 분화된 것이 중요한 변화였다. 다른 하나는 2024년의 생성형 AI 공모전으로, 현업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생성·데이터 분석·시각화 등 다양한 유스케이스가 나왔지만, 개인 역량에 의존한 방식은 회사 전체로 확산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확인했다. 공모전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기술 검증(PoC)과 사용성 개선을 거쳐 사내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 ‘미지’로 발전한 것은, 문제 정의의 출발점이 기술 부서에서 현업으로 옮겨 간 상징적 사례였다.
전환점은 2025년의 APS 도면 자동화 프로젝트였다. 오토데스크 플랫폼 서비스(APS)와 포마를 기반으로 PDF 출도의 반복 업무를 자동화해, 대형 프로젝트에서 하루가 걸리던 작업을 30분으로 줄였다. 그러나 윤 프로가 강조한 진짜 의미는 결과가 아니라 ‘개발 방식’에 있었다. AI와 협업하면서 기술 학습·코드 작성·오류 개선의 속도가 달라졌고, AI가 단순 보조 도구가 아니라 개발 과정을 함께 푸는 파트너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DX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AX 방식으로 완성한 첫 프로젝트”이자 DX에서 AX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로 규정했다.
이 가능성을 공식 운영 모델로 구조화한 것이 삼우 AI 프레임워크, 이른바 ‘사이프(CYPHE)’다. 핵심은 AI 활용을 개인의 실험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이다. 사이프는 세 관점으로 요약된다. 첫째, 고객과 회사의 정보를 안전하게 지키면서 AI를 강력하게 쓰는 표준 환경을 구축한다. 둘째, 특정 업무 목적에 맞는 AI 활용을 검증·지원하는 구조를 세운다. 셋째, 실제 업무 변화와 성과를 조직 차원에서 인정하고 확산한다. AI 활용의 기본값을 ‘보안 안에서의 활용’으로 바꾸고, 개인의 시도를 조직의 활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 유스케이스 등록과 인센티브·교육·멘토링으로 이어지는 성장 구조를 얹었다. 현업이 문제를 발굴하면 AX팀이 기술과 보안을 연결해 구체화하고, 현업의 오너십을 유지한 채 거버넌스와 파트너 리소스를 붙인다. 오토데스크 설루션과 연결성이 높은 케이스는 APS·포마 기반으로 더 확장된 업무 전환 모델로 발전시키며, 최근에는 오토데스크와 공동으로 AX 워크숍을 마쳤다고 밝혔다. 결론은 이랬다. “삼우의 AX는 AI 서비스를 도입한 결과가 아니라,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다. BIM이 설계 데이터를 만들었고, 자동화가 프로세스를 바꿨으며, AI와 클라우드는 문제 해결의 주체와 방식을 확장하고 있다.”
▲ 삼우건축 윤종근 프로의 ‘DX to AX’ 여정 발표
▲ 삼우건축 발표 인포그래픽(필자 생성 by Gemini)
오토데스크 AI로 여는 업무 혁신
마무리 세션은 오토데스크코리아의 정태승 박사와 성진호 수석이 맡았다. 고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AI를 쓰는 모습을 본 뒤, ‘그렇다면 오토데스크는 AI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짚는 자리였다.
AEC 관점 — 데이터 교환 모델과 포마, 그리고 어시스턴트의 현주소
정 박사는 오토데스크의 토대로 ‘데이터 교환(data exchange) 모델’을 먼저 꺼냈다. 한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소프트웨어가 쓰이지만 모든 데이터가 한곳에 모일 필요는 없고, 각 모델에서 필요한 부분만 상호 교환되도록 하는 것이 요체다. 이 기반 위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운영되는 베이스라인 플랫폼이 바로 포마이며, 이것이 오토데스크가 그리는 생태계라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에서 공간으로’라는 방향이었다. 같은 프롬프트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3차원 ‘공간’을 생성하는 기술에 지속 투자하고 있으며, “공간이 다음 세대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주소에 대해서는 솔직했다. 아직 목적 지향의 ‘에이전트’ 단계까지는 아니며, 현재는 ‘어시스턴트’ 수준이라는 것이다. 반복 작업 자동화, 정보 분석,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기능의 의사결정 지원이 지금의 몫이다. 제품별로는 사이트 디자인(Site Design)과 올해 출시하는 빌딩 디자인(Building Design)이 소개되었는데, 웹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고 파사드뿐 아니라 개별 실 단위까지 적용하며 그 데이터가 레빗으로 바로 넘어가는 흐름이 강조되었다. AutoCAD에서는 "보여줘/찾아줘/표준을 검토해 줘" 같은 문구로 QA·QC와 도움말을 어시스턴트가 처리하고, 포마(구 ACC)에서는 RFI 등 정해진 정보를 '필터'처럼 자연어로 조회·검토할 수 있다. 특히 공식 레빗 MCP 서버(베타)를 클로드와 약 1분 만에 연결해, 레빗을 열어 두고 문(door)에 대한 대시보드·일람을 3분 남짓에 만들어 내는 시연이 눈길을 끌었다.
D&M 관점 — 퓨전과 클로드(MCP)로 ‘의도’를 전달하다
이어 성진호 수석은 제조(Design & Make) 영역을 맡아, 퓨전(Fusion)과 AI의 결합을 직접 테스트한 결과를 공유했다. 그는 “본사 발표 자료가 아니라 제가 직접 돌려 본 내용”이라고 전제했다. 퓨전의 오토데스크 어시스턴트(Autodesk Assistant)는 같은 모깎기(R) 형상을 한 번에 선택·편집하거나,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한 이미지 렌더링, 오픈 API를 활용한 엔지니어링 앱 개발·배포를 지원한다.
제조 및 기계 설계 분야(DNN)를 담당한 성진호 수석의 오토데스크 퓨전 시연 역시 놀라웠다. 퓨전이 앤트로픽의 MCP 표준을 사용하기 때문에 클로드가 이질감 없이 붙어 명령 수행은 물론 결과를 스크린샷으로 분석하고 커뮤니케이션한다. 심플한 의자를 3D로 모델링하면 여섯 개의 골체가 배치되고 치수가 파라미터로 등록되며 BOM까지 자동 작성됐다. STL 메시를 솔리드로 변환하는 작업, 이미지를 주고 네 번의 피드백으로 원하는 형상을 얻는 과정도 시연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에이전트 협업’이었다. 에이전트 1이 제조를 전제로 한 지침(컨텍스트 약 100줄)을 만들고, 에이전트 2가 그에 맞춰 MCP 서버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펼쳐지는 구조의 의자가 제조 가능한 모델로 만들어지고, 관절이 연결된 로봇이 한 시간이 채 안 되어 생성되며, CNC 가공을 위한 툴패스도 만들어진다. 룰 베이스 CAM을 넘어, 가공되지 않는 영역을 피드백으로 알려 주면 공구 길이와 이송 속도를 스스로 조정하고 기가공 영역을 제외해 자동으로 연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D 도면을 3D로 변환하는 것은 아직 어렵지만, 규칙을 분석할 수 있는 도면이라면 구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성 수석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설계 개념이 ‘소프트웨어 조작’에서 '의도의 전달’로 넘어가고 있다.”
정리 — 데이터 자산화, 적합성 정의, 거버넌스
마지막으로 정 박사는 고객 사례와 겹치는 결론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데이터가 자산화되어야 한다. 둘째, 지금 하는 일이 그 모델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셋째, 조직이 어떤 거버넌스로 이를 운영할 것인가가 정리되어야 한다. 그는 “AX는 결국 운영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라며, 무엇을 쓰고 어떻게 절차를 만들지, 그리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문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서 생긴다는 뼈 있는 말이었다.
▲ 오토데스크코리아 정태승 박사의 오토데스크 AI 세션
▲ 오토데스크 코리아 발표 인포그래픽(필자 생성 by Gemini)
필자의 시선 — 도구는 이미 전제, 승부는 데이터와 거버넌스
하루를 되짚어 보면, 네 개의 발표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GS건설은 ‘CDE와 역할 분리’로, 간삼건축은 ‘감자 우화와 지식 자산화’로, 삼우건축은 ‘사이프와 유스케이스 성장 구조’로, 그리고 오토데스크는 ‘데이터 교환 모델과 데이터·거버넌스’로. 표현은 달라도 지향점은 하나였다. BIM 같은 도구는 이미 전제가 되었고, 승부처는 그 위에 쌓이는 데이터를 어떻게 자산화하고, 개인의 AI 활용을 어떻게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하느냐로 넘어가 있다는 것.
필자는 이 흐름이 개인 차원의 오래된 교훈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AI가 아무리 훌륭한 대안을 제시해도, 최종 판단은 도메인 지식을 가진 사람의 몫이다. 도구는 이미 민주화되었다. 이날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훈민정음을 빗대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지식의 민주화이고, 지금 AI가 바로 그렇다”고 한 것처럼, 이제 관건은 무엇을(도메인) 어떻게(프롬프트와 거버넌스) 시킬 것인가다. 개인 차원에서 ‘일머리’라 부르던 능력이, 조직 차원에서는 ‘데이터 자산화와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확장된 셈이다.
특히 “AX는 운영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화려한 AI 시연 사이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이었다. 결국 도구를 바꾸는 것만으로 혁신은 오지 않는다. 어떤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고, 누가 그것을 책임지며, 개인의 성과를 조직의 자산으로 어떻게 축적할 것인가 — 이 질문에 답하는 조직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 오토데스크 디자인&서밋 코리아 2026 핵심 메시지 인포그래픽(필자 생성 by Gemini)
맺음말
이번 서밋은 신기술의 전시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공유장에 가까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우리 조직은 어떤 데이터를, 어떤 거버넌스로 자산화하고 있는가.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AI 결과물은 개인의 실험으로 소모되고 있는가, 아니면 조직의 자산으로 쌓이고 있는가. 아직 답을 다 갖춘 조직은 없다. 모두 “늦은 감이 없지 않다”면서도 멈추지 않고 실험을 이어 가고 있었고, 오토데스크 역시 “내년에는 더 나아간 기술을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이맘때 이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례를 만나 보길 권한다. 도구를 넘어 운영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한 조직에게, 올해의 서밋은 좋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 양승규
캐드앤그래픽스 전문 필진으로, MOT를 공부하며 엔지니어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방 법에 대해 탐구한다. 건축과 CAD를 좋아한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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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