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다운로드] 전기 설계에서 AI 활용의 의미 그리고 위기와 기회
AI 시대의 새로운 제사장, 정보 권력의 재구성
역사는 정보의 통제권이 소수에서 다수로 확산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는 성경을 종교처럼 감추고 붙들고 있던 성직자들의 손에서 정보를 해방시켜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겼다. 이후 PC(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은 개인을 정보 생산의 주체로 만들었고, 인터넷은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정보망으로 엮어 지식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흐름에 미묘하지만 거대한 균열을 만들고 있다. 정보의 양이 인간의 처리 능력을 압도하는 지금, 우리는 AI가 쏟아내는 방대한 정보의 진위를 가리고 그 의미를 해석해 줄 새로운 권위, 즉 ‘AI 시대에 제사장 역할을 하는 전문가’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 구형서
전기 CAD인 WSCAD AI와 컨설팅을 공급하는 WS코리아의 대표이다. 경기중소벤처기업청 주최 AI 도입 최우수 사례 등 국내 전기 설계 분야에 AI를 적용해 설계와 업무를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홈페이지 | www.wscad.co.kr
정보 권력의 진화 : 사제부터 AI까지
정보의 형태와 소유권, 보편화 수준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권력 구조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필사 시대에는 정보가 성경이나 고전처럼 손으로 옮겨 적어야 하는 희소한 자원이었고, 그 소유권 역시 제사장·성직자·왕족 등 극히 제한된 계층에게만 허락되었다. 당시의 정보는 특정 계급에 의해 독점되었으며, 대다수는 그 내용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텍스트 중심의 기록만 존재했고, 정보는 곧 권력 그 자체였다.
금속 활자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서서히 달라졌다. 인쇄 기술 덕분에 서적과 팸플릿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고, 지식인과 신흥 부르주아 계층까지 정보의 소유 범위가 넓어졌다. 문해력이 향상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의 세계로 들어왔고,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의 활용까지 확대되며 지식의 확산 속도도 빨라졌다.
PC 시대는 개인의 손에 정보 생산 도구가 쥐어진 시기였다. 디지털 문서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초기 온라인 데이터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정보를 만들어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정보의 개인 소유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터넷 시대는 공간과 시간의 장벽을 무너뜨린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웹사이트, 이메일, 온라인 커뮤니티,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개인과 기업뿐 아니라 집단지성까지 정보의 생산과 공유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보는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복합적인 형태로 확장되었고, 누구나 실시간으로 접근하고 나눌 수 있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 시대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개인화된 맞춤 정보, 생성형 콘텐츠, 데이터 기반 예측 등 인간이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는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AI 플랫폼을 다루는 특정 분야 전문가들은 점차 새로운 정보 권력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정보의 해석·판단·선별 능력이 이 시대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잡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음성, 코드 등 인간이 다뤄 온 거의 모든 형식의 정보가 AI에 의해 생성되면서, 정보의 보편화와 동시에 개인화가 동시에 심화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표 1
사례 연구 1 : 바둑계의 지각 변동
AI가 어떻게 기존의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드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바둑계다. 수천 년간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정보 권력의 변화는 바둑계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시대가 바뀔수록 ‘누가 바둑의 정수를 소유하고, 어떻게 학습하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가’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사장 시대의 바둑은 철저히 폐쇄적이었다. 특정 도장과 사범이 모든 기력과 권위를 독점했고, 제자들은 사범의 지도와 도장 내부의 비공식적인 기보를 통해서만 실력을 기를 수 있었다. 명인의 대국을 직접 관전하거나 신문에 실리는 한정된 해설을 통해 배우는 것이 전부였고, 사범의 인정을 받아 도장의 제자가 되는 것만이 성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였다.
금속 활자 시대에 해당하는 ‘바둑책의 시대’는 판을 바꿨다. 정석과 포석, 묘수풀이 등을 담은 책들이 보급되면서 지식의 대중화가 시작되었고, 일부 도장의 권위는 약해졌다. 누구나 책을 통해 고수의 기보를 연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형화된 이론과 패턴을 스스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길이 열렸다. 고전 이론을 깊이 파고드는 노력이 중요한 시대였다.
PC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바둑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했다. 온라인 대국 플랫폼이 생기면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사라졌고, 전 세계의 상대와 언제든 대국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 기사의 온라인 강의와 녹화 강좌(VOD)를 누구나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전 경험이 빠르게 축적되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의견 교환과 토론도 활발해졌다. 개인들은 방대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동료들과 협업하며 성장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AI 시대는 바둑의 문법 자체를 다시 썼다. 알파고와 이후의 AI 바둑 엔진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쌓아 올린 정석과 이론을 무력화하거나 재해석했고, 프로기사의 절대적 권위는 흔들렸다. AI의 수를 학습하고 AI가 제시하는 수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 학습법이 되었다. 대국을 관전할 때도 AI 그래프를 보며 판단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기사의 심리’보다 ‘AI의 평가’가 승부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바둑에서 진정한 권력은 AI를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AI의 수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그 의미를 실제 창의적 판단으로 응용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바둑 역시 정보 권력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폐쇄적 전수 체계에서 책의 시대, 온라인 시대를 거쳐 지금은 AI가 중심이 되는 시대까지 – 학습 방식, 권위의 구조, 성공 방정식이 시대마다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이 변화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야, 모든 전문가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의 권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나는 그 흐름 위에 서 있는가?’
사례 연구 2 : 전기 설계 분야의 AI 영향
전기 설계 분야 역시 시대의 변화와 함께 권력의 구조, 학습 방식, 그리고 도면을 다루는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어 왔다. 정보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가 변할 때마다, 전기 설계 실무에서의 경쟁력 역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제사장 시대에 해당하는 사수·도제식 시기에는 특정 사수나 회사가 경험과 지식을 독점하며 사실상 권위를 형성했다. 도면의 스타일은 개인화되었고 표준이 자리 잡지 못한 채, 도면 그 자체가 결과물이자 지식의 핵심이었다. 학습은 선배에게 받는 1:1 전수식 교육이 중심이었고, 과거 도면을 그대로 베끼거나 수정하면서 암묵지를 습득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이 시대의 경쟁력은 ‘유능한 사수를 만나 그의 노하우를 얼마나 잘 전수받았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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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