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프트웨어 정의 기술,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의 토대
이른 아침 어느 공장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밤사이 새로운 제품 모델이 생산 라인에 추가됐다. 기계를 새로 구축하지도, 제어반의 배선을 다시 연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생산 라인은 이미 새로운 제품에 맞춰 구성과 검증, 최적화를 마친 상태로 가동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은 현재 수요에 맞게 조정됐고, 생산 처리량 역시 품질 목표와 균형을 이루도록 최적화됐다. 첫 제품이 생산되기도 전에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든 변경 사항에 대한 검증이 완료됐다. 현장 인력은 원격으로 공정을 관리하며 전체 과정을 원활하게 조율하고, 필요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산업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변화가 일상이 되는 시대
산업용 AI는 혁신 주기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더 짧은 납기와 더 높은 수준의 지속가능성을 요구받고 있다. 동시에 산업 설비는 수십 년에 걸쳐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많은 기업은 여기서 딜레마에 직면한다. 생산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AI가 제공하는 속도와 유연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해답은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역량을 더하는 데 있다. 산업계에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개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을 중단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은 통합된 고성능 자동화 포트폴리오와 세 가지 긴밀하게 연결된 핵심 축, 즉 포괄적인 디지털 트윈, 하드웨어에 종속된 기능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구성·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기술(Software-Defined Everything : SDx), 그리고 산업용 AI와의 결합이다.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면 기존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 개념은 산업 인텔리전스의 시대로 확장되고,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를 구현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된다.
전통적인 자동화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로
기존의 자동화 기술은 오랜 기간 뛰어난 성과를 거둬 왔으며, 그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하드웨어 기반 제어 시스템과 PLC, 고정된 시퀀스는 수십 년 동안 안정성, 품질, 효율을 뒷받침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소프트웨어 정의 시대라고 해서 하드웨어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높은 성능과 신뢰성, 연결성을 갖춘 하드웨어가 요구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동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제 산업 현장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잦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SDx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SDx의 진정한 의미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은 현대 IT와 AI 분야에서 검증된 원칙인 모듈화, 표준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산업 영역으로 확장한다. 목표는 모든 것을 소프트웨어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처음부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인텔리전스를 더하고, 하드웨어는 핵심 역할을 유지한다. 이 둘이 결합될 때 더욱 스마트하고 유연한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프레임워크에서 자동화 기술과 운영 소프트웨어는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하드웨어는 계속해서 동작을 실행하고, 공정을 제어하며, 안전성을 보장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구성과 결합 방식을 정의하고, 변화하는 요구에 맞춰 어떻게 조정할지를 결정한다. 기능은 더 이상 개별 장치에 고정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능을 정의하고 관리하며 배포할 수 있다.
그 효과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수작업, 재설계, 가동 중단이 필요했던 변경 작업을 이제는 더욱 빠르고 안전하게 준비하고, 시험하며, 적용할 수 있다.
SDx의 진정한 가치는 제품과 생산을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바라볼 때 드러난다. 제품과 생산에 적용되는 SDx는 제품 요구사항, 성능 특성, 생산 역량을 전체 수명주기에 걸쳐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품이 변경되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생산 능력, 에너지 가용성, 품질 추이 등 생산 조건이 변화하면 그 영향이 제품에 어떻게 이어질지도 조기에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은 문서와 가정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동일한 현실을 반영하는 디지털 표현을 기반으로 협업할 수 있다. 자동화 기술과 운영 소프트웨어는 엔지니어링, 생산, 운영 전반의 복잡성을 함께 조율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변화에 더욱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며, SDx는 확장 가능한 AI와 장기적인 회복탄력성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 : 대체가 아닌 진화
보다 넓은 SDx 프레임워크에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Software-Defined Automation : SDA)는 SDx를 생산 영역에 적용한 개념이다.
SDA는 자동화 계층 자체를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으로 전환한다. 제어 로직, 기능, 인텔리전스를 소프트웨어에서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이를 물리적 하드웨어와 분리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필요한 경우 기능을 특정 장치에 종속시키지 않도록 분리할 수 있는데, 이는 자동화의 역할을 약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자동화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제어 로직과 기능은 특정 장비에 밀접하게 종속되는 대신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리된다. 검증된 자동화 설루션은 재사용 가능한 모듈 형태로 구성되며, 업데이트와 최적화, 보안 패치는 전체 수명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즉, 자동화는 핵심적인 제어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소프트웨어는 자동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자동화의 다음 단계, ‘자동화의 자동화’
자동화가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으로 전환되면 더욱 큰 변화가 가능해진다. 모든 공정을 일일이 세부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산업 시스템은 목표와 운영 맥락, 지속적인 학습을 기반으로 과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세부 지침은 목표로, 가정은 맥락으로, 반복은 학습으로 대체된다.
이것이 바로 ‘자동화의 자동화’다. 엔지니어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반복해서 구현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확장 가능한 설루션을 설계하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생산 시스템 역시 이전처럼 업그레이드를 기다리며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한다. 하드웨어는 안정적인 실행 기반을 유지하고, 소프트웨어는 유연성, 인텔리전스, 학습 역량을 제공한다. 제어 로직, 기능, 인텔리전스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의되고 중앙에서 관리되며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동시에 하드웨어는 결정론적이고 고성능인 실행 기반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의 실제 구현
이러한 변화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는 자동차 산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 기업들은 지멘스와 함께 SDA를 SDx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고 있다. TÜV 인증을 받은 가상 PLC를 도입하면 생산 제어 로직을 더 이상 물리적 제어 하드웨어에 종속시키지 않고 소프트웨어로 실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제어 로직을 중앙에서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이는 자동화 계층 자체를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SDA의 핵심 원칙을 보여준다. 새로운 기능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적용할 수 있으며, 생산 시스템은 새로운 차량 모델에 맞춰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업데이트와 테스트를 가상 환경에서 사전에 준비하고 검증할 수 있다. IT와 OT 환경은 하나의 통합된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 환경으로 결합된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정의 제조로의 전환은 국내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생산 체계를 전환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oftware Defined Factory : SDF)’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고, 제조 시스템을 하드웨어, 제어, 데이터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의 4개 레이어 구조로 재정립했다. 이를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독립적으로 개선하는 동시에 전 세계 공장의 운영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최신 생산 알고리즘을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다.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를 향하여
결과적으로 생산 시스템은 효율뿐 아니라 학습과 AI 활용 역량까지 갖추게 된다. 이는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AI의 잠재력이 더욱 커진다. 자동화, 엔지니어링 모델, 시뮬레이션, 실시간 운영 데이터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연결되면 AI는 단순한 분석을 넘어 실제 시스템의 실행에도 관여할 수 있다. AI는 목표 상태와 실제 현장의 작동 상태를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장비와 생산 라인, 공장 전반에 걸쳐 다양한 패턴을 감지한다. AI가 도출한 권고안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먼저 검증된 뒤 산업용 하드웨어에서 안전하게 실행되며, 경우에 따라 자율적으로 수행될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화는 인사이트에서 실행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다시 학습에 반영되는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학습은 더 이상 특정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인 운영 과정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로의 전환은 국내 산업 정책에서도 구체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피지컬 AI 핵심 경쟁력 확보 전략’을 발표하고 데이터, 기술, 확산, 생태계의 4대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제조 현장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공정 상태를 예측해 스스로 최적 제어하는 자율 정밀 제조 기술과 공장 상황 변화에 맞춰 미래 상태를 예측하고 유연하게 생산하는 공장 운영 기술을 실제 현장에 실증할 계획이다. 이는 데이터와 AI를 제조 현장의 자동화·운영 시스템과 연결해 AI의 역할을 분석에서 판단과 실행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이다.
다가오는 산업의 미래
SDx, 디지털 트윈, 산업용 AI가 결합하면 운영 시스템은 스스로 학습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원활하게 실행된다. 이를 통해 인사이트를 실제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의 결합은 산업용 메타버스와 같은 미래 개념을 구현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산업용 메타버스는 단순한 시각화 기술이 아니라 계획, 시뮬레이션, 협업, 실행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합 운영 환경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가 하루아침에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이미 갖춰진 기술적 기반 위에서 한 단계씩 만들어 나가야 한다.
변화를 향한 첫걸음
새로운 프로세스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SDx처럼 생산 환경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기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SDx를 처음부터 하나의 거대한 과제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를 실행 가능한 작은 단위로 나누고, 무엇보다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직면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업은 먼저 현재의 과제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정의 방식을 선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기술적 기반은 이미 마련돼 있다. 진정한 변화는 산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핵심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설계 단계부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시대에는 회복탄력성이 궁극적인 경쟁 우위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멘스는 산업 공정, 자동화, OT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도메인 지식과 IT, 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하고 있다. 이처럼 OT와 IT 영역을 연결하는 역량을 바탕으로 지멘스는 SDx를 산업 현장에서 구현하고, 고객이 진정한 AI 기반 디지털 엔터프라이즈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 오병준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 한국지사장이다. 30여 년 이상 한국의 여러 글로벌 IT 기업을 거치며 비즈니스 및 기술 전문성을 구축해 왔다. SAS 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오라클 코리아, 테라데이터 코리아, IBM 코리아 임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작성일 : 20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