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
급성장을 해오던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에 빨간 불이 켜진 지도 꽤 된 듯하다. 과거의 급성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중요한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첫째, 미국, 유럽, 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 롤모델이 있었고, 둘째, 대규모 장치산업을 근간으로 하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주력산업의 선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계 정상권에 진입한 분야에서는 우리가 퍼스트 무버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따라 할 롤모델이 없다. 게다가 중국, 인도 등이 과거 우리가 했던 것처럼 우리를 롤 모델(role model) 삼아 맹추격하고 있다. 저가의 노동력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본력까지 무장하여 이제는 거의 턱밑까지 와있다.
사실 역전을 허용한 분야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말 그대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한국이 샌드위치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선진국을 따라 했지만 그들만큼의 원천기술력은 못 가졌고, 중국, 인도와 같은 거대 시장, 거대 자본도 없기 때문에 샌드위치라는 표현은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대포장 한 거라는 비난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스피드와 높은 원가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대규모 장치산업을 근간으로 주력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산업 구조가 우리의 발목을 잡게 생겼다. 선진국처럼 소프트웨어가 강한 나라는 시장 환경이 바뀌면 마음만 고쳐먹으면 된다. 대규모의 선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으로 쉽게 전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커다란 약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을 따라 하지도 못 하고, 개발도상국으로부터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과연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주력산업에 어떠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자. 자동차의 전장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최근의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자동차의 붐은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전장화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이다. 독일, 일본 메이커들의 자동차는 제조원가 중 전장화 비율이 이미 50%를 넘어섰다. 2030년이면 자동차 원가의 80%가 전장 또는 소프트웨어일 거라는 전망도 있다. 즉, 무형의 만져지지도 않는 소프트웨어가 원가의 절반 이상인데 벤츠, 아우디, BMW의 시판가격은 동급 현대기아차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자동차 값에서의 차액이 소프트웨어에 기인한 것이므로 결국 소프트웨어가 제품의 이익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가 소프트웨어 분야에 약한 것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언어, 즉 영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속성상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영어권과 대학에 가서야 시작할 수 있는 우리와의 차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언어적인 속성이 더욱 필요한 포털과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경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와 밀접하게 붙어있는 소프트웨어, 우리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 (임베디드SW)에 매진해야 한다. 더욱이 세계가 융합신산업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소프트웨어가 융합의 중심에 서 있다.
결론적으로 제품의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통한 융합에 의해 좌우된다. 융합은 두 개 이상의 분야가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다시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자. 자동차 전문가가 쉽게 IT 또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겸할 수 있을까? 반대로 IT 또는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쉽게 자동차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두 분야 모두에 정통한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융합은 전문가와 전문가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제품 성능 또는 회사 이익과 같은 공동의 목표를 얻기 위해서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협업을 할 때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마치 남녀가 만나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결혼하면서 소통도 않고 심지어는 상대를 무시하고 배척하겠다고 마음먹지는 않는다. 그래서는 결혼 생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융합형 인재란 두 가지 모두에 정통한 인재를 뜻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분야와 함께 일 하려는 의지가 있고,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이 있는 인재를 일컫는다.
다른 분야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경험해 보지 않은 분야라고 무턱대고 겁을 먹어서도 안 된다. 즉, 융합형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다른 분야를 경험해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막상 경험해 보면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과 열린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최근에는 AI가 중심이 되어 메타버스, 블록체인,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 및 응용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의 융합을 통해 다양한 플랫폼이 선을 보이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플랫폼의 대형화/독점화 등이 일어나고 있다. 아차 하면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융합형 인재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규택 객원교수
서울대학교 글로벌R&D센터 부센터장
작성일 : 202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