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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메이커 다은쌤의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 (5)
2018-01-04 2,137 26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 이야기 Ⅲ



안녕하세요. 메이커 다은쌤입니다.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는 저의 총 예산 2000만원을 들고 7개월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메이커페어를 다녀오는 프로젝트입니다. 2017년 3월 29일에 떠나 205일만인 10월 19일에 서울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예산을 모두 사용하기 위해 다시 11월 8일에 한국을 떠나 올해 12번째로 참가한 중국 선전 메이커페어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2017년, 총 8개 나라에서 열리는 12개의 메이커페어를 참여했습니다. 

지난 3월 기획했던 '메이커 다은쌤의 2017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여기서 제가 판단한 ‘성공’이란 무탈하게 여행을 마치고 건강히 돌아온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마지막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전다은 | ‘메이커 다은쌤’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 메이커로, 메이커 문화에 관심이 많고 개인적으로 메이킹을 즐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메이커로서 주로 3D 프린터를 이용한 창작을 즐기고 있으며, ‘Eunny’라는 이름으로 모델링 파일을 공유하고 있고, 메이커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함께 알아가기 위해 유튜브에서는 ‘메이커 다은쌤’ 채널을 운영 중이다.


실망과 놀라움이 공존한 뉴욕 메이커페어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누빈 유럽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처음 여행을 기획할 때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열리는 두 메이커페어는 규모가 큰 행사로서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여행일정 중에 3번이나 대서양을 건너는 스케줄이 만들어졌다. 

9번째로 참가한 뉴욕 메이커페어는 뉴욕의 Hall of Science에 서 9월 23~24일 이틀간 진행되었다. 앞선 여행에서 이미 너무 많은 메이커페어를 봐서였을까, 뉴욕 메이커페어는 살짝 실망스러웠다. 새롭고 신선한 작품보다는 이미 보았던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큰 메이커페어 행사이다보니 여러 곳에서 참여한 스타트업 부스도 꽤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쉬움도 잠시, 존 3의 Maker Health에서 놀라움을 발견하였다. 의료에 관심이 많은 사람과 대학의 의과생뿐만 아니라 현직의 의사 간호사들이 메이커페어에 참가하고 있었다. 많이 알려진 3D 프린팅 의수, 의족은 물론이고 의학 교육과 수술 시뮬레이션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키트, DIY로 만드는 분광광도계(혈액을 검사할 수 있는 장치로 도상개발국을 위해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를 보면서 ‘우와 이런 것도 만드는 메이커가 있구나’ 하면서 매우 놀랐다. 

간호사와 병원 관계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Maker Nurse 팀은 찍찍이 콧수염(Velcro Mustouch)을 나에게 보여줬다. 찍찍이 콧수염은 코에 끼는 산소호흡기가 자꾸 빠지는 환자를 위해서 만들어 사용 중이라고 한다. 신기술의 무엇이 아니라 정말 경험적으로 병원에서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만든다고 하는데, 나에게 설명해준 간호사는 자신의 병원에 메이킹을 위한 공간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의학관련 메이킹 활동을 하고 공유하는 사이트로 www.makerhealth.co도 알려주었다. 메이커의 문화가 취미, 창업, 교육을 넘어서 의학에도 적용되고, 이 또한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메이킹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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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메이커페어에 참가한 의사 메이커. 수술 연습 교육용 키트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모두를 위한 동네 잔치, 피츠버그 메이커페어 


처음 계획은 캐나다의 오타와 메이커페어를 방문하는 것이었으나, 행사는 연기되었고 대신 피츠버그 메이커페어를 방문했다. 피츠버그 메이커페어는 도시 중앙에 있는 Children’s Museum of Pittsburgh(어린이 박물관)에서 열렸는데, 내가 방문한 메이커페어 중에 몇 안 되는 무료 입장 메이커페어였다. 대부분은 입장료를 받는다. 

어린이 박물관 앞 야외 공간에는 짚단이 쌓인 커다란 카트레이싱장이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DIY 전동 카트레이싱이 열렸는데, 카트레이싱이 없을 때는 그 곳에서 손 인형극, 구연동화, 서커스 등 크고 작은 공연이 열렸다. 공간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관람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운영자의 마음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시울이 따뜻해진 것은 행사 옆에서 수화 설명이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구연 동화를 할 때도, 카트레이싱을 할 때도 자원 봉사자가 나와 수화로 행사 진행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8개국 12개의 메이커페어를 참여했지만 단 한번도 수화로 행사의 상황을 전달해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정말 ‘모두’를 고려한 메이커페어라고 느꼈는데, 행사 관계자에게 물으니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생각하지 못한 모습에 놀람과 감동을 동시에 받아 한동안 멍하니 수화하는 자원봉사자를 바라보았다. 

피츠버그의 메이커페어는 작은 규모의 메이커페어였지만 주말에 엄마 손,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무료로 관람하고, 자유롭게 잔디 위에서 뛰놀고, 다채로운 공연을 구경하다가는 즐거운 동네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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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무대 계단의 흰 옷을 입고 있는 자원봉사자가 카트레이싱 경기를 수화로 설명하고 있다.


드디어 서울! 


피츠버그 메이커페어의 다음은 서울이다. 드디어 한국을 떠난지 7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거의 1년 전에 예매한 비행기 티켓과 예상 못한 피츠버그 방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피츠버그-보스턴-뉴욕-베이징-김포로 들어가는 어마무시한 일정이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말할 수 있다. 2017년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를 위해 환승을 포함하여 총 32번의 비행기를 탑승했다. 

2017년 10월 19일 어둑한 저녁 내가 탑승한 비행기가 김포에 닿았을 때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수고했다 다은아!’ 속으로 나 자신을 다독이며 별탈 없이 모든 여행을 해냈다는 성취감, 살아서 돌아왔다는 안도감, 집에 갈 수 있다는 기쁨, 언제 또 이렇게 여행해보지 하는 아쉬움 등 여러 감정이 벅차 올랐다. 


벌써 4번째 참가하는 서울 메이커페어 


시차 적응을 제대로 못한 채 바로 서울 메이커페어에 참석했다. 서울 메이커페어는 개인적으로 2014년부터 4년 연속 참여하는 메이커페어이자 11번째 참여하는 메이커페어이다.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 6회를 맞이한 서울 메이커페어는 불광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렸다. 

돌아온 서울 메이커페어에서 처음으로 11개의 메이커페어를 돌면서 받은 메이커페어 기념 티셔츠를 벽에 붙였다. 또한 참가할 때 목에 걸었던 내 이름표도 벽에 하나씩 붙이니 그 이름표를 만질 때마다 그 순간의 기억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벽에 옷과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단순해보여도 심플 애니멀즈 전시를 위한 돔을 만드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붙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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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 붙인 다른 나라 메이커페어 티셔츠들과 서울 메이커페어의 내 부스 모습이다.


한국에 돌아오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특히 4년째 참가하고 있는 서울 메이커페어는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메이커들의 동창 모임 같은 곳이다. 오랜만에 본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며 많은 사진을 함께 찍었다.

외국 메이커페어에서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를 전시할 때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은 “네가 갔던 메이커페어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거의 항상 처음으로 받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달랐다. “여러 나라의 메이커페어를 다녀왔어요”라고 전시를 하고 있는 나에게 묻는 질문들은 “한국은 어때요? 한국은 규모가 작죠? 한국은 수준이 어때요? 한국은 별로죠?”였다. 이 질문들을 들으면서 ‘아 내가 한국에 와 있구나’를 정말 다시 한 번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다녀온 저 다양하고 넓은 세상의 메이커페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한국이 어떠냐고 비교부터 하고 있었다. “한국도 좋아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마음에 남은 씁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유종의 미를 만들기 위해서 서울 메이커페어에서 짧게 세미나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피츠버그 메이커페어를 마치고 비행기를 4번 갈아타고 돌아온 일정에 발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400GB인데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행사 당일도 시차 적응을 못해 3시간만 자고 나간 상태였다. 말이 발표였지 사실은 ‘저 잘 살아서 돌아왔어요’ 하는 생존 보고였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청중들이 ‘잘 다녀왔어요, 수고했어요’ 하는 마음에 쳐 주신 박수 소리만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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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메이커페어에서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 소개와 살아 돌아온 생존 보고를 하고 있다.


남은 돈까지 탈탈, 중국 선전으로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는 처음 시작했을 때 그 동안 모은 2000만원을 예산으로 시작했다. 여행 중간중간 귀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남은 예산을 활용하여 처음 계획에 없었던 중국 선전 메이커페어에 참가하기로 했다. 휴식도 잠시, 다시 중국에 가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선전은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실제로 선전에 사는 90% 이상의 사람들은 중국 전역에서 스타트업을 꿈꾸며 모여든 젊은 사람들로, 도시 인구의 평균 나이는 30살이 안 된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많은 부분 메이커 운동이나 메이킹 활동을 창업 활동과 연결짓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메이커페어에 비하면 업체들의 제품 홍보가 유독 많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중국이 가지는 교육열이 나타난 코딩 교구와 학원 등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앞서 다녀온 서양에서의 메이커페어와 분명 달랐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깊이 생각해 볼 가치는 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중국에서 열리는 메이커페어지만 정말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등 근방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페루, 멕시코, 호주에서 온 메이커들까지 있었다. 왜 이 곳에 왔냐고 물으니 선전이 궁금해서 겸사겸사 선전 메이커페어에 참여했다고 한다. 메이커들이 재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선전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매력때문에 선전에는 다양한 국가의 메이커 참가자가 이어질 것 같다.


8개 나라 12개 메이커페어를 돌아다니며


무모하기 그지 없었던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가 끝났다. 메이커페어를 참가하겠다는 큰 그림은 있었지만 세세한 계획 없이 여행을 출발했다. 참가를 예상했던 시카고, 마드리드, 오타와 메이커페어는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대신 아인트호벤, 피츠버그, 선전 메이커페어를 추가로 다녀왔다. 그래서 여행 순서로 영국, 오스틴, 베이 에어리어, 파리, 바르셀로나, 낭트, 하노버, 아인트호벤, 뉴욕, 피츠버그, 서울, 선전 메이커페어를 직접 나의 작품을 들고 참여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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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완성된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 플래카드이다. 
2017년 9월호에 실렸던 플래카드와 비교하면 변경된 일정과 추가로 참석한 메이커페어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점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면, 시니어 메이커들이 많았던 영국, 다양한 난이도의 작품이 출품된 오스틴, 역시 세계 최대 최고의 메이커페어를 자랑하는 베이 에어리어, 가장 멋있는 실내 메이커페어 파리, 뜨거운 포옹으로 더 뜨거웠던 바르셀로나, 나의 최고의 메이커페어 낭트, 기술을 즐기는 하노버, 재활용이 생활이 된 아인트호벤, 모두의 동네잔치 피츠버그, 의사 간호사 메이커들을 만난 뉴욕, 매년 성장 중인 서울 메이커페어, 아시아의 허브를 꿈구는 선전 메이커까지 어느 하나 잊지 못할 것이다. 

다녀온 모든 메이커페어를 영상으로 직접 남겼다. 궁금하면 한번 꼭 보기를 바란다. https://goo.gl/F2XPb8



사랑 받은 내 작품 심플 애니멀즈 


나에게 가장 의미가 깊은 것은 관람자가 아니라 모두 메이커페어의 참가자로서 행사를 다녔다는 것이다. 메이커페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보통 2달 전 시작하는 모집 기간에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가 승락되어야 메이커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데, 나는 별 탈 없이 신청서를 작성한 모든 메이커페어에 참여하였다. 

이미 2015년부터 인터넷에 공개, 공유 중인 심플 애니멀즈(Simple Animals) 덕을 많이 보았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내 작품을 보았다는 사람을 간간히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작품 전시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동물들은 내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7개월의 여행 동안 정말 하나하나 애지중지 가방에 넣고 다녔으니 말이다. 여행에 들고 다니는 짐은 무거웠지만 내가 만든 동물 친구들과 함께한 이 시간은 평생 못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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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메이커페어에서 작품을 설치하고 찍은 사진. 직접 디자인하고 3D 프린터로 만든 동물들이 옆에 있다.


젊어서 고생한 7월 동안의 혼자 여행 


2011년 친구와 함께 ‘내일로’라는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국내 여행을 처음 떠났다. 첫 여행이 즐거운 경험을 안겨주어서일까, 그 이후로 매번 돈이 모이면 여행을 갔던 것 같다. 특히 2016년 처음 혼자 방문한 미국은 해외 여행도 혼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 

하지만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은 여행을 하면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메이커페어에 참가하고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었으나 여행은 녹녹치 않았다. 특히 메이커페어에 참여하기 위한 짐과 생활 짐은 합해서 35kg에 달했으며, 여행 중반부터 다가온 뜨거운 태양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여행 경비는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어디 가지 않고 방에 하루 종일 머문 날도 꽤 많았다. 특히나 메이커페어가 끝난 다음 날에는 무조건 집에서 하루를 쉬었다. 

여행을 다녀온 7개월이 나에게는 3년 정도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너무 달랐고 경험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런데 여행을 끝내고 서울 집에서 잠을 자는데, 다시 눈을 뜨니 유럽의 어느 한 에어비엔비에 있는 꿈을 꿨다. 어디가 현실인지, 정말 내가 다 갔다 온 것이 맞는지, 지금이 꿈인지 여러 생각이 든다. 

‘전 재산 탕진 프로젝트’로 잡았던 예산 2000만원 중 실제로 1900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실제로 전 재산을 탕진하지는 않았다. 여행 중 도움을 주었던 외국에 살고 있던 가족, 친구들뿐만 아니라 메이커페어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이 여행을 도와주고, 행사 때마다 받은 쏠쏠한 팁들은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랫동안 걸어다닌 탓에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 젊어서 고생을 정말 나의 전 재산을 사용하며 샀다. 앞으로 어떻게 다시 돈을 모을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2017년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에는 무슨 일들이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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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메이커페어에서 나의 작품을 번쩍 들고 찍은 사진이다. 
하나의 커다란 트로피 형상으로 고생한 내 자신과 여행에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기사 상세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전다은 makereunny@gmail.com


출처 : CAD&Graphics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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