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건축의 3대 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중업의 만남이 안양에서 이루어진다. 6월 17일까지 안양에 위치한 김중업건축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 개최되는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특별전에서는 김중업이 참여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중 10개의 주요작품과 관련된 123점의 원본 도면과 스케치를 대여하여 전시된다.
■ 이예지 기자 yjlee@cadgraphics.co.kr
김중업은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한국인 제자로, 1950년대 초 파리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근무하며 모더니즘 건축의 최전선을 경험한 뒤 귀국하여 우리 현대건축의 기반을 닦았다. 그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주한프랑스대사관 등 한국 현대건축사 상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김중업건축박물관 건물 역시 김중업의 초기 작품인 전 유유제약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이번 전시는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만남이 갖는 의의와 김중업 건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서구 모더니즘 건축이 김중업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에서 조망하는 출발선이 되는 뜻 깊은 전시가 될 것이다.
프롤로그 : 전쟁과 피난, 꿈과 모형
김중업은 6.25 전쟁 발발 이후 온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였다. 여러 대학들과 부산공업고등학교에서 강의하고 부산 송도 앞바다에 시인 조명화의 ‘패각의 집’을 설계하기도 하며 활동을 계속하던 중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이 때 당시 명예위원으로 참석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다. 대학시절부터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했던 김중업은 귀국 대신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가 있는 파리 세브르가 35번지로 향한다.
▲ 르 코르뷔지에의 개인사무실
섹션 1 :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가 그의 아틀리에에서 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당시 인도 샹디갈과 아메다바드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롱샹 성당, 자울 주택과 같은 대형 작품들이 진행되어 보다 많은 인재가 필요했던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는 김중업을 아틀리에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섹션 1에서는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던 르 코르뷔지에의 개인 사무실과 김중업이 일했던 아틀리에 공간 일부를 재현하였다. 이 곳에서는 김중업이 참여한 12개 프로젝트, 320여장의 도면을 한 장씩 넘기며 확인할 수 있다.
▲ 김중업 작성도면 열람공간
▲ 자울주택, 롱샹 성당, 위니테 다비타시옹 작품
섹션 2 : 아메다바드, 세 개의 건축
섹션 2에서는 김중업이 참여한 아메다바드의 작품들 중 세 개의 건축 작품인, 방직자협회 회관과 사라바이 저택, 쇼단 저택이 전시된다.
아메다바드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 최대의 도시이며 인도 면공업 중심지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아메다바드에서 방직자협회 회관, 사라바이 저택, 쉬만바이 저택, 쇼단 저택, 산스카르 켄드라 시립박물관의 설계를 맡아 진행하였다. 김중업은 방직자협회 회관, 사라바이 저택, 쉬만바이 저택, 쇼단 저택의 도면 일부를 작성했다.
섹션 3 : 새로운 도시, 샹디갈
르 코르뷔지에는 인도 북부 펀잡주의 수도인 샹디갈에서 캐피톨의 건물들, 의사당, 행정청사, 고등법원, 주지사 관저 설계에 주력했다. 김중업이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 들어간 1952년 10월 무렵에는 이미 캐피톨의 배치가 완료되었고, 주요 건물들의 설계가 진행 중이었다. 김중업은 1952년 11월 6일 완성된 행정청사 평면도를 시작으로 샹디갈 프로젝트의 도면작업에 전념했다. 이 당시의 경험은 김중업의 건축세계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실제로 김중업의 작품에는 샹디갈 캐피톨 건물의 모티브들이 새로운 건축언어로 번안되어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새로운 도시, 샹디갈 작품
섹션 4 : 1957, 김중업건축작품전
김중업은 1955년 12월 28일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 근무를 종료하고 1956년 2월 말 귀국하였다. 귀국 직후 김중업은 종로구 관훈동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홍익대학교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 김중업은 1년 가량 공보실 공보관에서 그동안 진행한 작업들을 모아 ‘김중업건축작품전’을 열었다. 당시 건축을 ‘작품’으로 전시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전시 감상평이 언론에 실리기도 하였으며, 김중업은 이 전시에 대하여 ‘서구적 조형정신을 동양적 조형전통 위에 올바르게 뿌리박음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건축에의 길을 장만해 보려는 노력에서 빚어진 이정표들’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1957년 4월에 열린 ‘김중업건축작품전’을 오마주하여 재현하며 당시 출품된 김중업의 초기작품들과 ‘유유제약 안양공장’, ‘주한프랑스대사관’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